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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뜬금없는 2025년 상반기 회고

[회고] 뜬금없는 2025년 상반기 회고

찌는 듯한 무더위가 점점 사그라들고, 이제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부는 척하는 8월 말에 때아닌 상반기 회고를 쓰고자 한다.

상반기를 회고하기엔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굳이 왜? 그냥 문득 쓰고 싶어서 쓴다. 사람이 어떻게 꼭 정해진 대로만 살아.

원래는 연 단위 회고를 작성했지만, 이번 상반기에는 많은 경험을 했고 많은 사람을 만났다. 이 기억들이 휘발되기 전에 기록해두고, 남은 가을과 겨울은 어떻게 보낼지 고민해보려 한다.

일? 커리어? 뭐 먹고 살지?

올해부터는 단순한 프론트엔드 개발자 커리어가 아니라… 뭐랄까… 부모님 학원에 들어와 잡부 포지션으로 일을 하고 있다.

마케팅을 공부하고, 경영을 공부하고, 조금 더 본격적으로 사회적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하며… 요즘은 곁들여서 새삼 디자인 공부의 필요성까지 느끼고 있다.

업무적으로는 교재 도서를 선정하고 논술 문제를 만들어 학원 교재를 편찬하고, 사내 업무를 매뉴얼화하고, 수업 시간표를 짜기도 한다. 대외적으로는 세무, 노무, 인사 등 기업의 근간이 되는 주제들을 학습하고 고민하고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며 학원의 방향성과 철학을 고민하고 ‘책임을 배워가는 중이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사실 무섭다. 걱정이 태산이다. 그냥 월급쟁이 하면서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

개발적으로는 학원 홈페이지를 제작·배포했고, 내부에서 사용할 용도로 Claude API를 연동한 AI 논술 채점 페이지를 만들어봤다. 손글씨 OCR 성능이 아쉬워 결국 학생 글을 직접 타이핑해야 하는 문제는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채점 시간이 줄었고, 교사별 점수 편차도 완화됐다. 자동으로 생성된 평가 요소별 피드백과 총평은 학부모에게 훨씬 직관적으로 전달됐다.

하반기에는 홈페이지 SEO 최적화(특히 FECONF에서 들은 「1년에 10억 절약한, 강남언니의 SEO 전략」 강의가 인상 깊었다. 다음 글은 이 후기다.)와 운영 로그를 통한 UX 개선을 해나갈 예정이다.

어느 순간 개발은 ‘엔지니어링이라기보다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하는 쪽에 더 가까워졌다. 개발의 우선순위는 여전히 헷갈리고 구현은 AI에게 많이 도움을 받았지만, 어쨌든 돌아가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앞으로는 단순히 개발만 잘하는 사람보다 AI든 무슨 도구든 활용해서 비즈니스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살아남을 거라고.

이 고민 속에서 내 학습 방향도, 개발자 모델도 바뀌었다. 물론 아직 좁은 시야에서 내린 판단일 수도 있다. 엄청난 기술적 역량을 요하는 조직에서 일해본 것도 아니고, 그런 프로덕트를 직접 만들어본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내가 공부하고 해온 것들이 이어져 앞으로의 나를 어디로 끌고 갈지 정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나는 대체되지 않는 인재가 되기 위해, ‘비즈니스적 가치를 창출하는 개발자가 되고자 한다.

모임들: 나는 왜 자꾸 판을 벌이는가

조직에서 나는 어떤 사람일까.

개발을 시작하고부터 나는 대부분의 공동체에서 두각을 드러내려고 했던 것 같다. 사람을 모으려면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서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던 걸까. 정확한 선후관계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나를 계속 채찍질해온 동력이었다.

  • 싸피 시절, 두 개의 스터디를 만들어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안부를 주고받고, 가끔 모여 개발 얘기를 한다.
  • 첫 회사에 들어가서도 프론트엔드 스터디를 만들었고, 1년 넘게 퇴사 후에도 스터디를 이어가고 있다. (구성원은 조금 바뀌었지만)
  • 뿐만 아니라 재직 시절, 사내 풋살 동호회에 들어갔다 회장까지 맡아버렸다.
  • 항해플러스 교육을 받으며 만난 분들과는 네트워킹을 이어가기 위해 총대를 메고 카톡방을 만들었다.
  • 한 달에 한 번씩은 ‘데브톡톡이라는 반(半)?음주 모임을 만들어 술 마시며 개발 수다를 떨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새벽 2시.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사회적 이미지를 돌아보게 된 것 같다.

한평생 거리 두던 단어들, ‘인싸, ‘외향적, ‘네트워킹. 이제는 그런 단어들이 나를 설명하게 됐다. 결국 사람 사이에서 관계를 만들고 책임을 지는 법을, 이런 모임들을 통해 조금씩 배워가는 것 같다.

상반기 추천 도서

요즘 나름 독서에 재미를 붙인 듯… 상반기에 읽은 책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책들을 몇 권 적어보겠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카를로 로벨리 저)

현대 물리학의 관점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해석한 책이다. 물리학책은 읽을 때마다 괜히 슬프다. 물리를 정말 좋아했던 학창시절의 고민이 괜스레 떠오른다. 조급했던 어린 마음에 성적에 맞춘 대학 진학이 아니라, 내가 좋아했던 공부를 계속했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박태웅의 AI 강의 2025 (박태웅 저)

AI를 단순히 개발의 도구로만 쓰다가 조금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해보고 싶어 고른 책. AI의 발전 과정과 앞으로의 방향성, 그리고 그 과정에서 논의되는 철학적 주제들을 다룬다. 기술적인 얘기를 넘어 사회 전체가 어떤 흐름 속에 있는지를 생각하게 했다.

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저)

올해 상반기에는 유독 많은 죽음을 경험했다. 바쁘고 힘들 때 맞닥뜨린 죽음들은 자연스레 인간의 삶 자체에 대해 사색하게 만들었다. 내 삶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보며 단단해지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개발 책은 왜 없냐구여? 기술서적은 개노잼이거등요.

근데 오히려 기술서적이 아닌 책들을 읽으면서 사고의 폭이 확 넓어진 걸 많이 느꼈다. 물리학, AI, 인생과 죽음처럼 전혀 다른 주제들을 넘나들다 보면, 단순히 개발자로서의 기술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회를 이해하는 시야가 열린다. 결국 이런 인문학적 배경이 있어야 문제를 다르게 바라보고, 새로운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고 있다.

취미 부자의 취미 생활

일만 하다가는 금방 번아웃 나니까 나름 환기를 위해 이것저것 취미들을 붙잡고 있다. 이런 게 있어야 롱런할 수 있는 거다. (핑계 맞다. 그저 노는게 제일 좋은 뽀로로일 뿐.)

러닝

4월쯤 5km 달리기부터 시작해서… 상반기에는 첫 10k 대회인 무도런을 다녀왔다. 하반기에는 산리오런 10k(9/20), 나이트런 10k(9/21), 국제평화마라톤 하프(10/3), 서울레이스 11k(10/12), MBN 마라톤 하프(11/16)이 예정돼 있다. 음… 미친놈인가...

나는 원래 ‘나 자신과의 싸움을 싫어한다. 스포츠란 모름지기 상대와 겨루며 승패가 갈리고, 그 안에서 드라마틱한 서사가 나오는 게 진짜 도파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래 헬스도 싫어했고, 당연히 러닝도 싫어했었다.

그런데 사실 처음에는 그냥 무한도전 집착광공 친구 때문에 무도런 나가려고 연습했는데, 뛰다 보니 페이스도 줄고, 뛰는 거리도 늘고, 예전에 아팠던 것들도 유튜브 보며 폼 교정하고 신발 바꾸니 안 아프게 뛰게 됐다.

이제는 온갖 잡생각이 들 때 10km 정도 뛰고 오면 모든 게 정리된다. (살고 싶다는 생각뿐...) 항해 과제하다가 스트레스 쌓이면 나가서 뛰고… 그러다 보니 이제는 내 생존 수단이 되어버렸다.

클라이밍

나름 오래된 취미. 위에서 말한 무한도전 집착광공 친구 때문에 입문했고, 벌써 2년 차다. 근데 여전히 못한다. 난 팔다리도 짧고, 몸은 무겁고, 유연하지도 않고, 겁도 많다. 그래도 그럭저럭 서브 취미로는 꾸준히 하고 있다. 올해는 무도 집착광공 남과 같이 크루에도 들어가서 새로운 사람들이랑 재밌게 즐기는 중. 역시 운동만 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는 없다!

등산

이것도 새로 시작한 커뮤니케이션 도구!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다녀보기 시작했다. 요즘 개발 얘기 제일 많이 하는 임모 씨가 등산 메이트. 관악산, 제주 오름(한라산은 폭설로 통제됨), 청계산, 북한산, 용마산(언덕), 아차산(언덕)… 이런저런 산들을 다니다가 여름에 녹아버려 잠시 중단. 항해 사람들과도 우루루 몰려서 몇 번 다녀왔었다. 꽤 대화가 잘 풀리는 활동 같다. 이제 선선해지니 9월에 다시 한라산 도전 예정이다.

콘서트

아아. 그저 내 도파민 충전소. 올해는 콜드플레이, 아이묭, 잔나비, 그리고 잔나비 앵콜 콘서트까지 다녀왔다. 시간이 안 맞고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페스티벌은 하나도 못 간 게 아쉽다. 당장 다음 달 부락이라도 예매해서 깃발 흔들며 슬램 조져야 하나 고민 중.

음악은 참 신기하다. 가사 한 줄에 눈물이 나고, 멜로디 하나에 벅차오르기도 한다. 이런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런 무대를 볼 때마다 나도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결국 이렇게 이것저것 취미에 손대는 것도 다 핑계지만… 그래도 이런 환기 덕분에 계속 달릴 힘이 생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취미들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친해지고,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었다. 나한테는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좋은 커뮤니케이션 도구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이 취미가 아니라 의무가 아닐까

그래서 하반기에는?

열심히 써놓고 보니 그냥 일기 같네... “이거저거 많이 했네~” 정도밖에 안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상반기에 내가 가장 크게 붙잡고 있던 고민은 결국 두 가지였다.

인간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앞으로의 방향성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무더운 여름답게 시원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모든 관계와 방향성의 밑바탕에는 ‘책임이 있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30년간 피해 다니던 책임의 무게를 이제는 온전히 느끼고, 그걸 감당할 능력을 갖추는 것. 그게 올해 남은 시간의 과제다.

상반기의 유한별과 하반기의 유한별은 다르다. (머리 길이부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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