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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의 온실』 — 불완전한 공동체를 위하여

도서 『지구 끝의 온실』 리뷰

『지구 끝의 온실』 — 불완전한 공동체를 위하여

📖 책 정보

지구 끝의 온실

  • 저자: 김초엽
  • 출판사: 자이언트북스
  • 분야: 한국문학, SF장편소설

사람들은 살면서 많은 공동체를 마주한다.
내 의지로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이든, 타인의 의지로 강제로 끼워 맞춰진 곳이든.
그 안에서 우리는 치유받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한다.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때로는 나의 실존을 위협하는 무기가 되기도 하는.
공동체란 본질적으로 모순된 곳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그 모순에 대해 생각했다.


작가는 온실의 모순성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온실의 모순성을 좋아한다. 자연이자 인공인 온실, 구획되고 통제된 자연. 멀리 갈 수 없는 식물들이 머나먼 지구 반대편의 풍경을 재현하는 공간." — 작가의 말

이 소설에서 온실은 곧 공동체다. 프림 빌리지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
더스트로 뒤덮인 세상에서 식물을 재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도피처.
그런데 그 도피처는 아름답기만 한 곳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이 굶주리며 잠든 밤에도 온실은 언제나 환히 빛났다. 온실은 마을에 희망을 주었고, 마을은 그 희망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런 거래에 기꺼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 202쪽

희망을 주는 공간이 동시에 희생을 요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는 것.
이건 비단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내가 몸담아 온 공동체들도 그랬다.
함께 있어 버틸 수 있었던 순간이 있었고, 함께 있기 때문에 무너진 순간도 있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가장 마음이 간 인물은 프림 빌리지의 리더 지수다.

지수는 여러 대안 공동체의 탄생과 소멸을 목격한 사람이다.
돔 안도 답이 아니고 밖도 답이 아닌 상황에서 그가 도달한 결론은 이것이었다.

"돔을 없애는 거야. 그냥 모두가 밖에서 살아가게 하는 거지. 불완전한 채로. 그럼 그게 진짜 대안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 똑같은 문제가 다시 생길 거야.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어. 뭔가를 해야 해. 현상 유지란 없어, 예정된 종말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을 계속해서 벌이는 것 자체가 우리를 그나마 나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거야." — 227쪽

불완전해도 시작하는 것. 답이 아닌 줄 알면서도 움직이는 것.
공동체를 이끄는 사람의 신념으로서 이보다 솔직한 말이 있을까.

그런데 이 신념의 이면에는 레이첼이 있었다.
지수는 온실에서 홀로 식물을 연구하는 사이보그 과학자 레이첼을 사랑했다.
공동체를 향한 대의는 진짜였고 레이첼을 향한 사랑도 진짜였다.

다만 그 둘은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 않았다.
대의와 사랑이 부딪히는 자리에서 지수는 레이첼의 감정 제어 장치를 몰래 건드리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

이것이 공동체를 이끄는 사람이 안고 갈 수밖에 없는 모순이 아닐까.
숭고한 방향성 안에 개인적인 마음이 얽혀 있고 그걸 깔끔하게 분리할 수 없다는 것.
나는 지수를 비난할 수 없었다.
공동체 안에서 리더라는 자리에 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마주칠 수밖에 없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프림 빌리지 안에서도 사람들이 바라보는 방향은 제각각이었다.
나오미에게는 떠돌이의 삶을 멈추게 해준 생존의 터전이었고, 대니와 하루 같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생존 논리가 충돌하는 공간이었다.
누군가는 공동체의 확장을 바랐고, 누군가는 폐쇄를 원했고, 그리고 누군가는 온실을 희생시켜서라도 당장의 삶을 지키길 원했다.

"프림 빌리지는 거대한 기적이었지만, 기적이라는 말은 근원을 알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곳은 불안정한 기반 위에 세워진 도피처였다." — 204쪽

모두에게 같은 의미였던 공동체는 없다.
우리가 경험해 온 공동체들도 마찬가지다.
같은 조직 안에서 누군가는 희망을 보고, 누군가는 불안을 보고, 그리고 누군가는 탈출구를 찾는다.
그 어느 쪽도 틀리지 않았다.


결국 프림 빌리지는 무너진다. 하지만 소설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수는 사람들에게 모스바나의 씨앗을 나눠주었다.
더스트를 분해하는 능력을 가졌지만 동시에 주변을 잠식하며 퍼져나가는 모순된 식물.
프림 빌리지는 끝나더라도, 이 씨앗이 뿌리내릴 새로운 공동체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
지수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나오미는 그 씨앗을 들고 호버카에 올랐다.

"매일을 쌓아가면 이곳도 지속될 것이라고, 우리의 도피처는 파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숲 바깥의 세계는 시시각각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먹구름 같은 멸망은 머리 위에서 매일 짙어져갔다. 그것을 올려다보고 있지 않아 외면해왔을 뿐이다." — 237, 238쪽

올려다보지 않아 외면해왔을 뿐이다.
이 말이 계속 맴돌았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공동체의 균열을 감지하면서도 올려다보지 않는 것으로 괜찮은 척하는 순간들.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그 공동체를 마주했을 때,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모든 공동체에는 생애주기가 있다.
탄생하고, 모순을 품고, 결국 무너진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다시 어딘가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세운다.
불완전한 채로.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마도 나는,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 작가의 말

어쩌면 중요한 건 완벽한 공동체를 찾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공동체 안에서 무엇을 지키기로 선택하느냐일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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