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멸종』 — 우리는 어디에도 진짜로 있지 않다
도서 『경험의 멸종』 리뷰

📖 책 정보
경험의 멸종 — 기술이 경험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은 계속 인간일 수 있을까
- 저자: 크리스틴 로젠
- 출판사: 어크로스
- 분야: 인문학, 인문교양
경험을 소비하는 시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우리의 '경험'은 점점 희소해져 간다.
여행을 가면 그 공기, 온도, 습도...를 오감으로 느끼기보다,
리뷰로 점철된 인기 스팟에 가서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는 것으로 이를 갈음한다.
콘서트에 가도, 전시회에 가도.
모두가 천편일률적으로 스마트폰을 들어 채 모두 담을 수 없는 자신의 경험을 담고 있다.
수많은 사진을 통해 너무나 익숙해진 풍경을 실제로 마주했을 때, 우리는 기묘한 권태를 느낀다.
저자는 이를 "현실에 대한 실망"이라 부른다.
"수많은 사진을 통해 너무나 익숙해진 풍경이었다. 사진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 236쪽
눈앞의 현실이 예상했던 것보다 어쩐지 '덜 진짜' 같다는 불안한 깨달음.
이미지로 먼저 소비해버린 경험은 정작 그 자리에 서 있을 때 우리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그렇게 장소(place)는 공간(space)으로 대체되고 있다.
"공간은 경계가 생기고 인적 요소가 가미될 때 장소로 변한다." — 이-푸 투안, 278쪽
사이버 공간은 있지만 사이버 장소는 없다.
우리는 어디에나 접속할 수 있지만, 어디에도 진짜로 있지 않다.
한 꺼풀 덧씌워진 거리
코로나의 범유행 이후,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서로의 얼굴을 맞대며 감정을 읽어내던 우리는, 2D 화면 너머의 사람(요즘은 AI의 발전으로 진짜 사람인지조차 알 수 없는)과의 부족한 눈맞춤을 이어가며 협업을 해나갔다.
그렇게 우리는 한 꺼풀 덧씌워진 상태로 서로를 대하게 되었고, 그만큼 거리는 멀어졌다.
책에서 인용된 한 연구가 인상적이었다.
"오늘날 대학생의 공감 능력은 20~30년 전의 대학생보다 약 40퍼센트 낮으며, 가장 급격한 감소세는 스마트폰 보급과 추세가 일치한다." — 188쪽
온라인에서 '친구'를 쉽게 사귈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문제에 반응하고 싶지 않을 때 그냥 무시해버릴 수 있게 되었다고.
그리고 그 행동은 오프라인으로도 이어진다.
마찬가지로 그 과정에서 핵개인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관계의 단절.
SNS로 소통하는 온라인상의 관계가 현실의 관계보다 때론 더 중요해 보이는 세태.
내향형 성격을 타고난 나에게는 어쩌면 조금은 편할 수도 있는 변화의 방향성이다.
그치만 그 안락함 속에서, 우리는 분명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다.
교실에서 마주한 변화
거창하지는 않지만 교육 업계에 몸담고 있는 입장으로서, 다음 세대의 아이들을 바라보았을 때 분명한 변화가 눈에 보인다.
그것도 부정적인 방향의.
저자는 대면 상호작용을 화면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이들의 정서적, 발달적 측면에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아이들은 감정에 대해 배워야 하며, 그 방법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아이들은 진짜 상대방의 눈을 봐야 한다." — 76쪽
"대면 커뮤니케이션을 피한다면 꼭 배워야 하는 필수적인 것들을 배우지 못하게 된다." — 77쪽
손 글씨에 대한 연구도 그랬다.
타이핑이나 덧쓰기와 달리, 손 글씨만이 뇌의 읽기 회로를 활성화시킨다는 결과.
손 글씨가 읽기 능력의 기초가 되는 뇌 영역을 준비시킨다는 사실.
학원가에서 십수 년간 아이들을 보며 체감하는 것이 있다.
손으로 글씨를 쓰는 일이 줄어든 세대의 아이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훨씬 개인적이며 사고의 호흡이 짧아졌다.
물론 이것이 온전히 기술 탓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교실에서 마주하는 변화가, 이 책이 말하는 경험의 멸종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겠다.
"어린아이들의 놀이를 허락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세상을 이해할 권리를 허락하지 않는 것과 같다." — 에리카 크리스타키스, 119쪽
놀이가 서서히 쇠퇴하고, 아이들이 스크린에 몰입하는 시간이 증가하는 지금 — 우리는 아이들의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바로 그것을 포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딱 떨어지지 않는 경험의 조각들
한 가지 더 마음에 걸린 것이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스마트폰 좀 내려놓자"는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가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은, 효율과 예측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삼는 세계의 구조 그 자체다.
알고리즘은 점점 더 정교한 방법으로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찾아가고, 향후 행동까지 세밀하게 예측한다.
기술 기업들은 우리의 감정을 자신의 재산처럼 대하며, 효율성과 예측 가능성과 반복 가능성 같은 것들을 삶에 투영한다.
"효율성, 예측 가능성, 반복 가능성 등 기술이 촉진하는 것들은 우리가 감정적 삶에서 반드시 가치를 두어야 할 것들이 아니다. (중략) 우리는 점점 더 기계처럼 되어간다." — 213쪽
하지만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우리의 삶에는 우연과 불화, 어색함과 실패가 있다.
"인본주의는 우연과 불화가 새로운 앱이나 더 정교한 알고리즘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인간 경험의 필수적인 부분임을 인식하고 포용해야 한다." — 40쪽
"대면 대화의 어색함과 신체적인 한계 같은 것들을 마찰 없이 매끄럽게 만들고자 하지만 바로 그런 것들이야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딱 떨어지지 않는 경험의 조각들이다." — 41쪽
기술의 역할은 우리의 감각을 확장하는 것이지, 감각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새 대체를 확장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마찰을 되찾는 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까.
"건전치 못한 영향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기술로 가능해진 매끄러운 삶에 다시 마찰을 도입해야 한다." — 325쪽
동시에 저자는 기술을 부정하지 않는다.
"기술은 해방의 도구이자 억압의 도구다." — 루이스 멈퍼드, 325쪽
양면적이라는 것이다.
기술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기술이 우리의 감각과 경험을 '대체'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문제라는 것.
한편으로 이런 비평에 대한 반론도 있다.
"뜻밖의 경험이 주는 기쁨과 모든 것에 즉시 접근할 수 있는 편리함이 주는 기쁨을 모두 가질 수는 없다." — 308쪽
일리가 없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은 명쾌한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질문을 선명하게 만들어준다.
기술이 감각을 확장하는 것인지, 대체하는 것인지.
우리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인지, 소비하고 있는 것인지.
이 매끄러운 세계 안에서,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온전히 '겪고' 있는 것인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오늘도 스마트폰을 내려놓지 못한 채 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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