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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 오사카 여행기

26년 3월 8~11일 오사카 여행기

3월 8일부터 11일까지, 오사카에 다녀왔다.
다녀온 지 거진 일주일이 다 되어서야 이 글을 쓴다.
남들은 가볍게 다녀오는 여행을 이렇게까지 끙끙대며 적고 있는 게 좀 민망해서 미루고 미루다, 결국 쓴다.

남들 다 가는 일본 여행이다.
주변에선 1년에 서너 번도 다녀온다.
뭐가 그리 대단해서 적느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다.

본디 나는 여행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문화가 다른 곳. 언어가 다른 곳.
낯선 질서 속에서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경험.
그게 부딪히고 깨지는 일이다 보니, 설렘보다 부담이 먼저 온다.

준비하는 과정도 그렇다.
숙소를 고르고, 동선을 짜고, 맛집을 검색하는 그 시간이 누군가에겐 여행의 일부겠지만, 나에겐 숙제에 가깝다.

그래서 여행은 나에게 늘 쉼이 아니라 도전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도전이란, 결과와 보상이 수반되어야 하는 행위다.
뭔가를 얻어와야 한다.
그래야 의미가 생긴다.

이번 오사카 여행도 그랬다.
본토의 음식이 궁금했고, 젊은이들의 패션이 궁금했고, 그 도시 사람들이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가 궁금했다.
기대는 그런 것들이었다.

'스미마셍' 한 단어만 아는 상태로, 그 기대와 걱정을 함께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기대는, 대체로 깨졌다.

숙소는 도톤보리 근처였다.
도착하자마자 알았다. 여기가 유흥가 한복판이라는 걸.
한 블록만 걸어도 클럽과 바들이 이어지고, 길마다 삐끼들과 호객행위를 하는 여성분들이 수십 명씩 서 있었다.
첫째 날은 난바에만 머물렀다.
일본이 대충 다 이런 건가, 싶었다.

궁금했던 공간들도 기대 이하였다.
츠타야를 난바와 우메다 두 곳을 가봤는데, 그냥 책 파는 스타벅스 같았다.
공간이 삶을 담는 방식이 궁금해서 간 건데, 거기엔 진열된 라이프스타일만 있었다.
러닝을 하면서 자전거에 치일 뻔하기도 했다.
자전거 도로도 제대로 없고, 아침부터 무단횡단이 흔했다.
질서정연한 일본이라는 이미지가 깨지는 데는 하루면 충분했다.

미디어로 소비한 일본은 하나의 이미지였다.
발을 딛고 서니 도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더라.
난바에서 지하철을 타고 우메다에 내렸을 때 그걸 확실히 느꼈다.
깔끔하고, 정돈되어 있고. 뭐랄까, 판교 같았다.
같은 오사카 안에서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걸, 직접 걸어보기 전에는 몰랐다.

교토도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예뻤다. 다만 그 아름다움을 수천 명과 나눠 가져야 했다.
어디를 가든 카메라를 목에 건 관광객들 사이에 끼어 같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기대한 건 고즈넉함이었는데, 돌아온 건 인파 속의 피로였다.


그런데 깨지기만 한 건 아니었다.
계획하지 않은 틈에서, 예상 못한 것들이 들어왔다.

셋째 날 아침, 8시쯤 숙소를 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오사카성이었지만, 목적지보다 가는 길이 좋았다.
시내 골목골목을 지나며 사람들의 아침을 봤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가게를 여는 사람들.
정장 차림의 아저씨들이 줄지어 걸어가는 출근길.
미디어에서 보던 그 모습이 여기 있었다.
다만 관광지가 아니라 생활의 한복판에.

밤이면 수천 명이 몰리는 도톤보리엔 까마귀들밖에 없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커피 한 잔을 사려 했는데 열린 카페가 없었다.
유흥가의 아침은 그렇게 조용했다.

우메다의 볼더링 암장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일본 암장은 스태틱한 무브와 그립 중심의 문제가 주를 이루는데, 내가 부족한 부분들이었다.
거기서 만난 고수들의 무브를 보며 겸손해졌다.
관광지에서는 얻지 못한 걸 남의 놀이터에서 얻은 셈이다.
내가 못하는 걸 확인하는 시간이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게 도전의 보상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음식도 그랬다. 스시 오마카세도 먹었고, 비싼 야끼니꾸도 먹었다.
기억에 남냐고 물으면, 비쌌다는 것만 남았다.
그런데 이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기대 없이 들어간 저렴한 이자카야의 감자샐러드다.
김과 날계란이 올라간.

한국으로 치면 역전할머니맥주 같은 곳에서 먹은 한 접시.
비싼 식사는 흘러가고, 기대 없던 자리에서 먹은 게 남았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생각했다.
도전의 보상이 있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우리는 눈만 뜨면 아름다움을 잘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이 기억 속에서 얼마나 오래 살아남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의도적으로 파악하느냐에 달려 있다.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쇼핑도 했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고, 유명한 관광지도 다녔다.
그런데 그것들은 사진첩에는 남지만 몸에는 남지 않는다.
남는 건 이상한 것들이다.
까마귀만 돌아다니던 아침의 도톤보리.
암장에서 올려다본 고수의 무브.
저렴한 이자카야의 감자샐러드.
전부 계획하지 않은 순간들이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여행기는, 그래서 좀 어정쩡하다.
대단한 감동도, 인생이 바뀌는 깨달음도 없다.
다만, 다음에는 조금 덜 망설일 수 있겠다는 느낌 정도.
계획한 것들이 깨질 때, 그 틈으로 예상 못한 것들이 들어온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에.
그리고 그 정도면 나에게는 충분한 보상인지도 모른다.

'스미마셍' 한 마디로 시작한 여행이, 그래도 스미마셍 이상의 것을 남겨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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