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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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숫자

숫자에 대한 아무 생각

어느 순간부터 딱 떨어지는 숫자보다, 애매한 숫자를 좋아한다.

5, 10, 15, … 30, 100…
0과 5로 채워진 숫자들.
딱 떨어진다는 건 그 누구의 정의도 아니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묘한 안정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20대의 어느 날, 문득 이 반듯함에 대한 반발심이 치솟았다.
겨우 이깟걸로 어떤 감정이 치솟는다는 게, 치기 어린 몹쓸 마음가짐 같기도 하지만.
당시로서는 무언가 내 자신의 완벽주의에 대한, 나름의 반항이었을지 모른다.

아무튼, 그날 이후 묘하게 애매한 숫자들을 곁에 가까이 두기 시작했다.
10분만 쉬어야지. 가 아닌, 11분 38초의 타이머를 맞춘다거나.
아침 기상시간을 8시 30분이 아닌, 8시 26분. 이런 애매한 값으로.

이러한 삶을 몇 년간 지내면서, 무엇이 바뀌었나 되돌아보았다.
완벽주의적 성향이 줄어들었나?
음. 조금 줄어든 것도 같지만, 이 강박적인 불안정함에서 온 건 아니고.
시간이나 혹은 무언가 숫자로 표현할 것들에 대해 더 아끼며, 부지런한 삶을 영위하게 되었나?
그럴 리가.
사실 거창하게 바뀐 건 없다.

그런데 오늘도 타이머를 11분 38초에 맞추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다면서, 이 습관만은 여전히 남아 있다.
어쩌면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곁에 둘 수 있다는 것을 이 하찮은 숫자들에게서 배운 건지도 모른다.

적어도 누군가는, 완벽함보다는 저런 하찮은 숫자들도 사랑했다는 것에.
모두가 찾기보단, 아무도 찾지 않는 그 숫자들 안에서 가끔의 위로를 얻었다는 것을.

나 또한 마찬가지로 꽉 찬 12시 정각보다는,
그런, 13시 47분이란 애매하지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시간과 같은 사람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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