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의 트레바리 시즌7 후기
테오의 트레바리 시즌7 후기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남긴다.
벨로그를 쓰다 보니 개발 외적인 이야기를 적기가 부담스러웠다. 4분기에 내가 짠 코드는 아마 1천 줄도 안 될 거다. 내 AI가 짠 코드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주변시로 슬쩍 쳐다본 개발 업계는 AI가 점점 더 빠르게 발전하고 있더라. opencode 같은 AI 마에스트로 툴을 보면서 이제 미뤄뒀던 개인 블로그를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근황은 이 정도로 하고, 원래 하려던 이야기로 돌아가자.
복제인간 팀에서 벗어나려는 4개월

지난 4개월간 테오의 트레바리를 통해 총 4권의 책을 읽었다. 『집단의 힘』, 『신뢰의 과학』, 『팀워크의 부활』, 『다이버시티 파워』. 시즌7의 주제는 "소프트 스킬과 인문학, 집단의 힘: 집단은 어떻게 더 현명해지는가"였다. AI 시대에 하드스킬보다 소프트스킬이 더 중요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집단을 이끌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집단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보다 더 절실했던 건 따로 있었다.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궤적을 공유하고 있었다. 학력도, 커리어 방향도, 일하는 방식도,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도.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하나의 준거 집단 안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종종 복제인간 팀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감각을 느꼈다.

그래서 트레바리를 선택했다. 의도적으로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했다.
왜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서 멍청한 결정을 할까
4권의 책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아졌다. 집단은 왜 때로는 현명하고 때로는 어리석은가.
나는 회의 때마다 이 질문을 마주했다. 누가 봐도 좋지 않은 결정인데 그대로 진행되는 순간들. 심지어 내부에서 이게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묵묵히 진행되는 경우도 있었다. 책들을 읽으면서 조금씩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왜'의 부재였다. 조직이 '어떻게 함께 일할 것인가'만 고민하고 '왜 함께 일하는가'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매끄러운 조직생활이라는 명목 아래 소수의 의견이 무시되기 일쑤였다.
두 번째는 신뢰의 문제였다. 『팀워크의 부활』을 읽으며 나는 마틴과 제프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했다. 실패를 두려워하며 구명보트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위치하려는 사람. 신뢰가 무너진 조직에서는 누구도 쉽게 책임을 끌어안을 수 없었다.
세 번째는 다양성의 결여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게 가장 크게 와닿았다.
직선이 모여 평면이 된다
4회차 모임 때 나눴던 얘기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다. '인지적 다양성'이라는 개념이었다. 비유하자면, 내가 보는 세상이 직선이라면 서로 다른 직선들이 모여 하나의 평면을 만든다. 그 평면이 내 세상을 확장한다.
개발자로 일할 때, 나는 늘 비슷한 사람들과 일해왔다. 비슷한 학교를 나오고 같은 업계에서 일하고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우리는 회의를 하면 금방 의견이 모아졌다.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효율이 아니라 그냥 다들 같은 직선 위에 있었던 거였다.

첫 번째 의견이 나오는 순간 나머지 사람들의 뇌는 비판적 사고를 멈추고 안도감을 얻는다고 한다. 마치 정답이 정해진 것처럼 느끼게 되는 거다. 나도 그랬다. 누군가 먼저 의견을 내면 "맞아 그렇지" 하면서 거기에 살을 붙이기 바빴다.
그런데 재밌는 건 소수의 '틀린' 의견도 도움이 된다는 거였다. 심지어 그 의견이 말도 안 되는 반대 의견이거나 완전히 틀린 의견일지라도. 그 의견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구성원들이 자신의 생각을 재검토하게 되고 더 나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럼 질문은 이거다. 어떻게 하면 다양한 직선을 모을 수 있을까.

이건 최근의 AI 경험과도 연결됐다. 같은 주제라도 질문의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답이 나온다. 프롬프트를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AI가 보여주는 세상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방식으로 질문을 던진다면 우리는 훨씬 넓은 스펙트럼의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우리 조직 문화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지 않다는 거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수직적 리더십을 중심으로 움직여왔다. 리더가 방향을 제시하면 팔로워는 빠르게 따라간다. 그 과정에서 성공도 경험했다. 그 성공이 이 구조가 옳다는 확신을 강화했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충분히 복잡해졌다. 하나의 시선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조직은 더 많은 관점을 필요로 한다. 서로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충돌시켜야 한다.
그게 내가 트레바리에 온 이유였다. 복제인간 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다른 배경 다른 경험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부러움과 현타 사이
그렇다면 4개월의 독서 경험이 내 삶을 건강하게 바꿨는가. 솔직히 말하면 오히려 반대였다.
모임에서 다른 사람들의 조직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부러웠다. "우리 팀은 이렇게 해서 성공했어요" 같은 이야기들. 그런 걸 만들어내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현타가 왔다. 좋은 조직을 만들 수 없는 나만의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핑계를 만들어가며 점점 시니컬해졌다. "우리 조직은 달라" "여긴 안 돼" 이런 식으로.

그런데 그게 마냥 안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무엇이 더 좋은 조직인지'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됐다. 전에는 그냥 알지도 못했다. 이제는 해야 할 일이 생겼다. 한 단계 성장한 거다. 내가 트레바리 모임을 통해 기대했던 건 '훌륭한 리더'가 아니었다. (테오 미안해요!) 모두가 같은 말을 반복하는 에코 체임버에서 벗어나 서로의 생각에 반박하고 질문을 던지는 관계였다. 각자의 삶과 관점이 충돌하는 작은 공간 말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했다.
26년의 다짐

이걸 이겨내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건 26년 한 해의 목표로 두려고 한다. 내가 책임지는 작은 공동체만큼은 다르게 만들어보고 싶다. 신뢰를 구조로 설계하고 다양한 관점이 충돌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 처음엔 작을 거다. 하지만 시작은 할 수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트레바리 같은 모임에 참여하려고 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서로 다른 직선들이 만나 평면을 만들 수 있도록.
나는 그런 팀을 만들고 싶고 그런 대화가 오가는 자리에 계속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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