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하는 말들』 — 같은 책, 다른 언어
도서 『오역하는 말들』 리뷰

📖 책 정보
오역하는 말들
황석희 에세이
- 저자: 황석희
- 출판사: 북다
- 분야: 에세이
모든 갈등의 시작은, 서로의 말을 오역함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들었었다.
그렇게 내 서재 한 구석에 자리했지만, 몇 달간 우선순위가 높은 다른 책들을 읽느라 미뤄놨던 책이다.
최근에 책을 펼쳐 읽어보던 중. 절반쯤 지났을까.
『프로젝트 헤일메리』 영화를 보고 나온 후, 번역가 황석희의 이름이 있어 흥미로운 마음에 그의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아뿔싸. 불과 몇 시간이 채 되지 않은 디스패치의 따끈따끈한 기사, '성범죄 의혹' 논란.
절반을 조금 넘게 읽어놓은 터라, 이제 와서 책을 읽다가 말기엔 아깝고.
그렇다고 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에세이 특성상, 작가의 부도덕함은 충분히 이 글에서 나를 멀어지게 할 원인이 되었다.
미루고 미루다 나머지 절반 언저리를 읽고, 가볍게 글을 적어본다.
다만 이번에는 책의 내용보다는, 사람의 모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독자의 오역
앞의 절반은, 번역가라는 직업과 그 일이 제법 낯설었다.
그가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말하는 모습을 보며, 새로운 세상을 엿볼 수 있어서 신기해했다.
하지만 뉴스를 보고 난 이후,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이 사람은 뭔데 이렇게 남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 같지? — 심지어 그의 전문 분야인 번역 이야기를 하는데도 말이다.',
'자신의 아픔과 고됨은 그렇게 자주 꺼내면서, 왜 피해자의 아픔은?'
이런 색안경을 끼고 받아들이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이야기를 튕겨내고 있다.
같은 글을, 같은 문장을 읽으면서도, 뉴스 하나로 나는 이 책을 완전히 다른 언어로 번역해버렸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읽는 책이 같은 책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작가의 오역
나는 표리부동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누가 그런 사람을 좋아하겠느냐만서도.
적어도 썩은 속을 가지고 있다면, 맑은 물인 척 다른 사람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실패를 보듬으며 위로를 전하면서, 누군가에겐 씻지 못할 상처를 주는 모순된 모습.
위로의 언어를 능숙하게 다루면서도, 정작 누군가의 고통은 읽지 못한 — 아니, 읽지 않은 사람.
그가 쓴 따뜻한 문장들은, 결국 무엇을 번역한 것이었을까.
과거에 나 역시, 겉으로는 선한 말을 하면서 뒤에서는 부도덕한 짓을 저지르던 사람을 가까이서 경험한 적이 있다.
그때의 상처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더욱 혐오하게 만들었고, 이 책을 읽으며 그 감정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사회의 오역
이라기엔, 자본주의 세상에서 당연한 것일지도.
미디어의 조명 하나로 누군가는 쉽게 부와 명예를 얻는다.
그리고 그만큼 쉽게, 한순간에 잃는다.
올려주는 것도, 끌어내리는 것도 같은 손이다.
제대로 된 검증 없이 매스미디어는 우상을 만들어내고, 필요 없어지면 거침없이 부순다.
그 과정에 진실이 얼마나 담겨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야깃거리가 되느냐, 안 되느냐뿐.
그리고 많은 대중들은 자각 없이 그 흐름에 올라탄다.
누군가 번역해놓은 이미지를 원문인 줄 믿고, 띄울 때 함께 띄우고, 끌어내릴 때 함께 끌어내린다.
"번역가 황석희"라는 이름을 믿고 책을 집어들었던 내가, 지금은 그 이름 때문에 이러한 글을 쓰고 있다.
물론 나조차도 그런 팔랑귀를 가지고 책을 샀고, 같은 입으로 작가를 욕하고 있는 내 모습에 유독 혀끝이 쓰다.
나는 이 책의 원문을 읽은 걸까, 오역본을 읽은 걸까.
아니, 어쩌면 우리는 모두 — 서로를, 세상을, 때로는 자기 자신마저도 오역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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