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에 대한 소고(小考) Ⅱ — 새로운 도전에 대하여
산을 뛰며 든 생각들
탄천이 익숙해질 무렵, 산을 달려보았다.
TNF100 22K, 처음 나가본 트레일러닝 대회.
평탄한 길 위에서는 제법 짬이 쌓였다고 자신했었다.
하프 이하의 로드 대회에서는 페이스를 조절하고, 구간을 나누고, 어디서 무리하고 어디서 아낄지를 머릿속으로 그릴 줄 알았다.
5km, 10km, 15km로 차곡차곡 쌓이는 숫자가 좌표가 되어주고, 비슷한 속도로 묶여 달리는 무리의 등이 나침반이 되어주던 세계.
그러나 산은 달랐다.
매 발걸음마다 흙은 다른 각도로 발목을 받았고, 같은 거리를 두고도 오르막과 내리막은 완전히 다른 시간을 요구했다.
페이스라는 개념이 헐거워졌다.
내 한계가 어디쯤 있는지, 그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분배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더라.
그래서 보수적으로 발을 내딛을 수 밖에 없다.
알 수 없는 길을 걸을 때 할 수 있는 건 결국 아끼는 것뿐이니까.
호흡이 거칠어지지 않는 선에서만 다리를 움직였고, 오르막에서는 걸었으며, 평지에서야 비로소 달렸다.
그런데 어느 능선쯤에선가, 그 아낌이 거꾸로 답답해지는 순간이 왔다.
다리는 멀쩡한데, 폐는 여유가 있는데, 머릿속의 셈이 몸을 묶고 있는 느낌.
페이스메이커도 없고, 끌어주는 무리의 등도 없으니, 결국 내가 나를 믿어줄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로드 위에서 내가 믿었던 건 길들여진 리듬이었다.
수없이 반복해 몸에 새긴 호흡과 보폭.
그 견고한 박자에 나를 맡기는 일.
트레일 위에서 믿어야 했던 건 결이 좀 달랐다.
다음 발이 어디에 닿을지 모르는 채로, 매 순간의 판단을 그때그때 자신에게 맡기는 일.
같은 자기신뢰인데, 한쪽은 길들임에 대한 신뢰이고 다른 한쪽은 즉흥에 대한 신뢰다.
그렇게 능선을 몇 개 넘고 나니, 멈춰 서는 일조차 패배 같지 않았다.
호흡을 고르며 바라본 풍경 속에서 평지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건, 어쩌면 익숙한 신뢰의 형태를 한 번 갈아 끼워보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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